제이컵과 줄리아가 데이트를 시작했을 때 그들은 종종 '둘을 위한 종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의 안식일은 이랬다.
금요일 밤마다 제이컵은 한 주 동안 줄리아에게 쓴 편지를 읽어 주고 그녀는 외우고 있던 시를 암송해 주었다. 촛불 아래에서 전화기 플러그를 뽑아 놓고, 시계는 안락의자 쿠션 밑에 쑤셔 박고, 그들은 천천히 같이 준비한 저녁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물이 찰 동안 사랑을 나누었다. 수요일에는 해가 뜰 무렵 산책을 했다. 의도치 않았으나 산책이 의식이 된 듯 매주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그 인도가 그들의 길이라는 인상이 박혔다. 감지할 수는 없지만 그 자리에 그런 인상이 남았다. ...... 아침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제이컵은 줄리아의 다리 사이에 키스했다. 성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행동이었다. 그들은 여행하면서 안이 바깥보다 큰 것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조개껍데기에 담긴 바다, 다 쓴 타자기 리본, 거울 속의 세상 등이었다. 모든 것이 의식을 향해 움직이는 듯 했다. 화요일에 근무가 끝난 줄리아를 데리러 가는 제이컵, 침묵 속에서 함께 마시는 모닝커피, 제이컵의 책갈피를 작은 쪽지로 바꿔 주는 줄리아. 그러다가, 결국 한계까지 팽창했다 시작점으로 수축하는 우주처럼 모든 게 원상태로 돌아갔다.
이렇게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문제일까?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서 있는 곳과 늘 상상했던 것 사이의 크게 벌어진 거리가 꼭 실패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실망이 실망스러울 필요는 없다.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 거리, 실망은 성장하는 것, 아는 것, 헌신하는 것, 서로의 곁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이다. 혼자라면 누구나 완벽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삶이 아니다.
그리고 벌거벗은 채 침대에 누워 모든 것을, 수치스러운 것이든 불편한 것이든 상처를 줄지도 모르는 것이든 예외 없이 모든 것을 공유하자고 약속했다.
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 봐.
그녀가 혼자서 새 삶을 꾸리면 제이컵 역시 그럴 것이다. 그는 재혼할 것이다. 남자들은 그러니까. 그들은 극복하고 다시 시작한다. 매번.
난 내면의 독백을 잃어버렸어.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언제 생각해?
잘못 죽는 것보다 잘못 사는 게 훨씬 나빠.
혼자라면 더 행복할까? 난 엄마야. 그녀는 생각했다.
제이컵이 불을 끄고 접지 않은 안경을 협탁에 놓고 침대로, 십 년 된 아내 옆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옆으로 돌아누워 남편의 겨드랑이에 얼굴을 가져갔다. 그가 그녀의 정수리에 키스했다. 이제 그들은 역사 없이, 길잡이 삼을 죽은 별 하나 없이 둘만의 힘으로 나아갔다.
흠, 악역은 내게 맡겨 둬.
당신 말은 샘이 악역을 만나지 않게 해준다는 뜻이겠지.
내가 둘 다 할게.
아니, 당신은 구급 대원 노릇을 할거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그 애 행동을 고치려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거야. 그리고 둘은 웃음으로 끝맺고. 나는 다시 짜증을 돋우고 꼬치꼬치 트집 잡는 엄마로 남겠지. 둘은 자기들끼리 칠분짜리 눈짓을 하고, 나는 한 달 동안 분이 풀리지 않겠지.
최악이 뭔지 알고 싶어? 난 아무렇지도 않아. 이 일에서 가장 슬픈 건 내가 슬프지도 않다는 사실이었어.
이제 그만 자러 가자. 그 네 단어가 결혼을 다른 모든 관계와 다르게 만든다. 서로 동의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지만 이제 그만 자러 가자.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래야 하니까. 바로 이 순간 서를 증오하지만 이제 그만 자러 가자. 자신에게로, 그러나 함께 물러가자. 얼마나 많은 대화가 그 네 단어로 끝났을까? 얼마나 많은 싸움이?
우리가 서로보다 아이들을 더 사랑한다는게 슬퍼?
왜 그녀는 항상 나에게 이렇게 조금만 줄까?
자리 좀 비켜주실래요? 맥스가 물었다.
그 말의 부조리함. 그 고통과 아름다움에 제이컵은 거의 무릎을 꿇을 지경이었다. 십 년 반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그 덕분에 존재하게 된 이 두 독립된 의식이 이제는 그를 떠나 마음대로 움직일 뿐 아니라 자유를 요구했던 것이다.
불타는 건물 안에서 죽느니 90퍼센트 이상 전신 화상을 입더라도 빠져나오는 게 낫잖아.
아이들이 있으니까. 난 마흔세 살이니까. 그이하고 이십 년에 가까운 역사가 있고, 거의 다 좋았던 역사니까. 그가 멍청해서 그랬건
실수였건 근본은 좋은 사람이니까. 그는 좋은 사람이야. 난 누구하고도 성적인 문자를 주고받은 적이 절대 없지만 나도 나름대로 남자들이랑 시시덕거리거나 공상을 한 적은 있으니까. 내가 늘 좋은 아내였던 건 아니고 고의로 못되게 한 적도 많으니까. 내가 나약하니까.
난 그를 떠나지 않을거야.
왜?
결혼 생활은 그렇게 간단히 포기해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니, 포기할 수 없는 건 삶이야.
괜찮으세요? 아줌마 말이에요.
내가 뭐?
그건 왜 묻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세요.
내가? 아닌데.
그럼 됐어요.
울 것 같지 않은데?
그러나 울지도 모른다.
정신. 똑바로. 차려. 어서.
샘이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줄리아를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어떻게 된 거죠?" 그러고는 애원하듯 말했다. "재미있네요. 재미있어요. 그렇죠?"
그녀는 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뿐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아무 말도 하지 않지는 않았다. 이렇게 말했다. "사랑한다. 엄마 여기 있어."
너는 나를 한참이나 그대로 내버려 두더니 기침을 했지 다리를 홱 움직이고 다시 기침을 하고 천천히 살아났어. 네가 자신을 스스로 위험에 빠뜨릴 때보다 화가 난 적은 없단다. 길 양쪽을 잘 보지 않을 때, 가위를 함부로 쓸 때면 너를 때려주고 싶었어. 진짜로 때려 주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다룰 수 있었니?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제이컵과 줄리아, 내 아들과 며느리야, 오직 병이 있을 뿐이란다. 어떤 이들은 맹인이 되고, 어떤 이들은 농인이 되지. 척추뼈가 부러지는 이들도 있고, 심한 화상을 입는 이들도 있어. 하지만 네가 옳았다, 제이컵. 다시 그런 짓을 해야 할 때가 올거야. 게임이나 연습,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고통스러운 노력이 아니라 진짜로, 영원히.
그러나 그 때 줄리아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세게는 아니었다. 그저 애정이 전해질 만큼의 힘이었다. 그는 사랑을 느꼈다. 배우자의 사랑인지, 함께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의 사랑인지, 낭만적인 사랑인지, 친구 같은 사랑인지, 용서하는 사랑인지, 헌신적인 사랑인지, 체념하고 감수하는 사랑인지, 고집스레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랑인지 그 종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문지방에 서서 사랑을 분석하고 위안을 보류하고 행복을 강요하며 보냈다. 그녀가 아직 남편인 긔 손을 더 힘주어 잡고 말했다. "당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미안해" 그가 말했다. 그의 척추뼈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그들의 부모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그녀의 인식은 대개 깊이와 재미로 나뉘었다. 줄리아는 아이들이 자는 동안 확인해보고 싶은 본능적이고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제이컵은 야구 경기가 연장전에 들어가면 아이들을 깨웠다. 깊이와 재미의 이분법을 바라보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 제이컵이 실버스 박사와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고려하며 보낸 방법으로, 무거움과 가벼움이었다. 줄리아는 모든 것에 무게를 부여하고, 모든 은밀한 감정을 터놓고, 지나가듯 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완벽한 대화를 요구하고, 항상 슬픔의 가치를 주장했다. 제이컵을 대부분의 문제는 문제가 아니고 기분 전환이나 음식, 신체 활동으로 해결할 수 있거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줄리아는 항상 아이들에게 박물관, 해외여행, 흑백 영화 등 진지한 생활을 주고 싶어 했다. 제이컵은 워터파크, 야구 경기,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형편없는 슈퍼히어로 영화처럼 더 활기차고 의미없는 활동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그것들이 큰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정신이 형성되는 시기로 보았다. 그는 살면서 유일하게 안전과 행복을 느낄 기회로 보았다. 각자가 상대방에게서 무수히 많은 결점과 절대적 필요를 보았다.
언젠가 너도 하게 될 거다.
못 하면 어떡해요?
네가 아빠가 되면 네 위에는 아무도 없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 누가 그 일을 하겠니?
그래도 전 못 했을 것 같아요.
하고 싶지 않을수록 너는 더 아빠다워질 거야.
그의 눈물은 기억을 돌이키고 있었다. 노암이 다정함을 보여 준 순간 덕분에 입을 크게 벌린 다정함의 부재가 드러났다. 아빠는 삼십팔 일 동안 바닥에서 잤다. 개한테는 거부당할 위험이 없으니까 다정함을 베풀기가 더 쉬웠을까? 아니면 동물의 요구는 너무나도 동물적인 반면 인간의 요구는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에? 창가에서 울면서 샘은 다시 태어났다.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까, 얼마나 많을 것을 기억할까?
그러나 샘이 다친 후 너무 많이 사랑해서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한 제이컵의 말은 옳았다.
삶에 대해서. 어땠는지 기억 안 나? 삶 자체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거?
삶이 크고 귀중하게 느껴지는 많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은 지상에서 그의 시간들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했다. 일 년에 오 분이나 될까? 다 모으면 어느 정도가 될까? 하루? 기껏해야 그 정도일까? 다 모으면 어느 정도가 될까? 하루? 기껏해야 그 정도 일까? 사십 년의 삶에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하루라고?
누가 나한테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난 이렇게 대답해. 난 통로를 통과하고 있어. 목적지까지 내내 모든 것이 이행과 격변의 연속이야. 하지만 난 지금까지 오랫동안 나의 남은 삶은 하나의 긴 통로가 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어. 양쪽의 둥근 부분이 없는 모래시계랄까. 조금씩 계속 흘러내리기만 하지.
내 인생은 시시해.
문제는 기대했던 것을 이루면 근사하게 느껴지지만 일단 이루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거야. A 받았다! 결혼한다! 아들이다! 그러고 나면 다 지난 경험이 돼 버리는 거지. 당시에는 아무도 그걸 몰라. 다들 나중에야 알게 되지. 하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
당신이 어떤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거 알아. 나만큼 잘 이해할 사람은 없어. 그리고 당신이 다리도 좀 쭉 뻗고, 기름도 넣고, 소변도 볼 수 있는 휴게소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뻐.
부모 노릇은 할 일을 해치우는 것이다. 가정생활의 상당 부분은 애정을 주고 받는 것과 무관하고 의미도 없고 완수해야 할 의무뿐이다. 해냈다는 기분이 드는 완수도 아니고, 지금 자신에게 떨어진 일을 해치우는 것 뿐이다.
나는 평생 딱 두 번 누군가에게 언성을 높였다. 두 번 다 같은 사람이었다. 달리 말하면 평생 내가 안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달리 말하면 나는 단 한 사람에게만 나를 알도록 허락했다. 분노, 고통, 두려움을 뛰어넘는 슬픔 속에서 나는 줄리아에게 소리쳤다. 부당해! 부당해! 부당해!
너희가 엄마 사랑하는 거 알아. 지루해해도 괜찮아.
무슨 일이야?
말하면 당신이 나를 미워하게 될 거야.
절대 안 그래.
엄청나게 짜증 낼 거야.
생일은 짜증도 지불 유예하는 날이야.
그러자 그녀가 진짜로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말했다. 나 실은 근사한 걸 원했어.
내가 웃었다.
재미없어.
재미있어, 줄리아.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알면서 그걸 당신한테 숨긴 게 아니야. 나는 실망하려고 애쓰지 않았어.
알아.
전에 내가 했던 말 말이야. 진심이었어. 집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바로 지금, 지금 이 순간 실은 내가 근사한 걸 원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야. 내가 말이야. 진짜 바보 같지. 나 여덟 살짜리인가?
당신은 마흔 살이야.
그렇지? 난 자기 자신을 너무 늦게야 알아 버린 마흔 살이야. 그리고 더 나쁜 건 이러고도 마치 당신이 죄책감을 느끼거나 상처받지 않을 것처럼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거야.
당신이 내 책임이었던 적은 없었어. 그리고 당신은 여전히 내 책임이야.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야.
흠, 당신만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알게 모르게 당신한테 잘못했던 거 진심으로 미안해.
나한테 잘못한 적 없어.
했어.
우리 둘 다 실수를 한 거지.
당신이 무심코 문을 열었고, 내가 무심코 그 문을 닫았지.
무슨 문?
샘의 손 말이야.
줄리아가 조용히 울기 시작한다.
당신을 용서해 제이컵. 정말이야. 전부. 우리가 서로에게 숨겼던 것들, 우리 사이에 허락했던 것들 전부. 사소한 일들. 억누르고 참았던 것. 판단하기. 이제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중요했던 적도 없었어.
중요했어. 하지만 우리가 생각한 만큼은 아니었어. 그리고 당신도 나를 용서해주면 좋겠어.
용서해. 정말 당신 말이 맞아. 내 슬픔을 내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당신의 분노도.
나 화나지 않았어.
하지만 화났어.
진짜로 안 났어.
뭐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어?
줄리아, 난 ......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가까이 있기는 쉽지만 계속 그 상태로 있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친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취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디어조차도요. 그것들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습니다. 가끔은 너무 가까워서 우리의 일부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보면 더는 가까이 있지 않습니다. 떠나갑니다. 무언가를 시간이 흘러도 계속 가까이 두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 자리에 붙잡아 두는 것입니다. 붙잡고 싸우는 것입니다. 야곱이 천사와 그랬듯이 씨름하고 절대 놓지 않는 것입니다. 붙잡고 씨름하지 않으면 놓아 버리게 됩니다. 사랑은 투쟁의 부재가 아닙니다. 사랑은 투쟁입니다.
다시 할 수 있다면 훨씬 좋은 아빠가 될 텐데.
다시 할 수 있어.
아이를 더 가질 생각은 없어.
알아.
그리고 타임머신도 없어.
알아.
그리고 환생을 믿지도 않아.
알아.
우리가 잘해 나갈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 더 노력했더라면? 다시 돌아가서?
뭘 잘해 나가?
삶.
우리는 세 생명을 만들었어.
...
잘해 나간다. 실패하지 않고. 하지만 살면서 해야 할 그것보다 야심찬 일들이 있어.
그녀의 웃음소리를 내가 얼마나 사랑했던가.
나는 줄리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우리가 결코 끝까지 잘해 나갈 수 없었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또한 그녀가 나의 최선의 희망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이상하지? 우리는 십육 년을 함께 살았어.그 시절을 보낼 때는 그게 전부인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우리 삶에서 적은 부분이 되겠지. 그 모든 것이 그저 ...... 뭘까? 한 챕터였을까? ...... 당신 왜 울어?
내가 왜 우느냐고? 당신은 왜 울지 않아? 이게 인생이야. 난 이게 내 인생이기 때문에 우는 거야.
절댓값에 대해 얘기했던 거 기억나니? 물리학이었던가? 가끔은 감정이 그럴 때가 있단다. 긍정적인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많을 뿐인거지.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니.
확실해?
응. 그러나 생각하곤 했다. 다시 물어봐 줘.
알았어. 그러나 생각하곤 했다. 이리와
다시 물어봐 줘.
이리 와.
그러면 아무 말 없이 그가 그녀에게 가곤 했다. 그녀는 손을 그의 허벅지에 얹고, 그는 머리를 그녀의 가슴에 기댄 채 나란히 앉아 있곤 했다. 그들이 10대였다면 사랑의 시작처럼 보였을 테지만 그들은 결혼한 지 이십년이 되었고 그것은 사랑의 발굴이었다.
삶은 소중해. 그것이 모든 생각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거지. 가장 분명하면서도 가장 기억하기 어려운 것.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오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 내 삶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의 안식일은, 우리의 종교와 의식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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